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감독 잘못만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한 배우가... 인생 후반기에 실패로 겉보기엔 바닥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망가져서 사랑한다고... 망가지면 큰일날줄 알고 벌벌 떨면서 살았는데... 이곳에서 망가진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고, 잘 지내는 것을 보며 망가져도 괜찮은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사실 망가지는 것보다 망가지는 것이 두려운것이 더욱 큰 공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의 내 삶이 위태로워질까봐, 이 관계가 깨어질까봐 너무 많은 힘을 쓰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현재의 수준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행복보다는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상황에 모든 촛점을 기울이고 있는건 아닌가? 그런데 시험..
누군가가 그런말을 한다. 무우맛 알아? 진짜 맛있는건 무우맛이야~ 아무 맛도 없는듯하지만 그 안에 깊은 맛이 있어! 볶았을때, 무쳤을때, 끓였을때 모두 다른 맛을 낼 줄 알지... 주변과 잘 조회되면서~ 그러고 보니... 무우는 무슨 맛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생으로 먹을때는 썁샤롬한 시원한 느낌, 볶음나물일때는 살짝 구수한 느낌, 그리고 조림이나 국에서는 부드럽고 싶은 느낌 도드라지지 않지만 자신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주변화 조화를 이루는 무우... 빠른 시간안에 나를 보여줘야하고, 내 목소리를 높여야 존재감이 있을 것 같은... 요즘 같은 세상에... 무우의 맛은 은근한 존재감의 미학을 말하는듯하다. 왠지 오늘은 퇴근하면 어묵에 들어 있는 시원한 무우를 뽀얀 국물과 함께 먹고..
추운 시간 딱딱한 검은 갑옷을 두른채 긴 기다림을 참아낸 벗꽃나무는 여릿여릿한 연두빛을 보이더니 어느덧 핑크색의 꽃망울을 터트렸다. 흐드러지게 핀 꽃에 검은 나무일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도 새도 나비도 마음과 시선을 빼앗겨 넋을 놓고 바라본다. 눈과 코와 마음이 즐겁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만큼 찬란한 봄. 그러나 알고 있다. 이렇게 눈부신 봄은 언제나 짧다는것을...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더니 아까운 꽃이 다 떨어졌다. 세상 다줄 것 같이 설레이고 가슴벅차던 사랑이 허무하게 떠나간것처럼 그렇게 봄은 가슴에 그 여운을 담아둘 시간도 주지 않고, 안개가 사라지듯 그렇게 갑자기 떠나갈것이다. 그러나 싫망하지 않는 것은 지루한 시간들이 연거퍼 지나고 나면 검은 갑옷을 두른 나무는 다시 찬란한..
손바닥만 하더라도 무언가 가능성이 보였을때... 부푼 기대를 품게 된다 '뭔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것이 짠 하고 나타날 것 같은 설레임'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 기대하는 그 무언가는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기대와 싫망을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애시당초 가졌던 기대조차 희미해져가고 기대 없는 상태보다 기대 후에 오는 고꾸라짐에 더 큰 실망과 좌절을 느낀다. 기대와 싫망을 반복하다 도저히 안되겠다 하고 모든걸 내려 놓으려 하는 순간 조용히 뒤를 돌아본다. 업엔다운이 기막히게 아래위로 그려져 있는 휘황찬란한 그래프. 그런데 신기하게 후퇴하고만 있었다 생각했던 좌절스런 그 순간들 조차도 실제로는 커다란 비례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어릴적 시소 놀이처럼 때로는 올라갔다 때..
회식때 내 옆자리 그녀가 불쑥 물어왔다. "매니저님은 꿈이 뭐예요?" 이게 진정 나한테 하는 질문이 맞는건가? 직장생활 20년차 되가는 이 바닥에서 듣도 보도 못한 질문인데... 잠깐 난처해 하다가 나도 모르게 "글쎄~ 근데 그런게 궁금해?" 라고 답했다. 이제는 무언가 꿈꾸기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 팍팍한 현실을 살아 내는 것 만으로 버거운 하루. 그 와중에 꿈을 꾼다라... 그렇게 치부해 버리고 넘어가기엔 문득문득 그 질문이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꿈이라는게 내가 꼭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크기와 양과 높이등의 프레임에 의미를 가둬뒀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한 분위기를 웃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여도 좋고~ 투움바 파스타를 맛있게 잘 만드는 센스쟁..
이름을 불러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줄때 참 좋다.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이름을 대신 할 만한 호칭들은 많다. 매니저, 언니, 누나, 딸, 여친... 그런 호칭들에는 그 호칭에 어울릴법한 뭔가 그래야만할 것 같은 인식과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런것을 걷어낸 말간 상태의 "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자 마자 더 이상 나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찾고 있는 상대의 대한 확신 그것은 마치 어릴적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을때 밥먹으라며 거침없이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던 엄마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괜찮은척 하지 않는 나 쎈척 하지 않는 나 억지로 웃는척 하지 않는 나 이쁜척 하지 않는 나 이름을..
나무의자. 딱딱한 플라스틱과 차가운 철제 의자들과는 다른 나무의자만의 질감이 있다. 비록 자연 원형의 모습이 많이 변형 되긴 하였으나 생명의 흔적과 세월 속 사연이 뿜어내는 온기가 있다. 그것은 또한 부드럽지만 반면 단단한 의젓함을 가지고 있다. 처음 앉을때 조차도 낯설지 않는 친숙함과 익숙함이 있다. 때때로 어딘가에 부딛쳐 함몰되거나 스크래치가 나더라도 그것은 요란스럽지 않게 소리 없이 흉터를 품어 버린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흉터는 흠이 아닌 깊이가 되고, 고장남이 아닌 고상함이 되어 있다. 소리 없이 늘 그자리에 있지만 존재 자체로 자신의 넉넉함과 품격을 말하고 있는 나무의자에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은 저녁이다. 나로인해 당신이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진짜 사랑하기를 꿈꾸며...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머릿카락 보일라... 혹시라도 들킬라 자칫 다 알아버릴라 더 멀리, 더 깊이 숨어버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숨바꼭질은 찾아야 놀이가 된다. 너무 깊게 숨어서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버리면 술래자도 숨는자도 모두 외로워지는 게임이다. 아주 조금씩 용기를 내어 들켜보자. 머릿카락부터, 옷자락끝부분부터... 그러다 들켜 술래가 나를 찾게 되면 외로움도, 초라함도, 두려움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것 숨는것에 급급할때는 모르는 숨바꼭질 놀이의 진짜 기쁨이다. 나로인해 당신이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진짜 사랑하기를 꿈꾸며...
퇴근길 헛헛한 마음에는 두부가 송송 들어간 따듯한 된장찌개가 생각난다. 된장찌개 한 숟가락, 김 모락 나는 밥에 고등어구이 한 젓가락...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주말에는 달콤한 카스테라가 생각난다. 묵직하고 두툼한 노란 카스테라에 우유 한잔... 긴 여행길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빨간 김치찌개가 생각난다.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가 양은냄비에 보글보글 걸쭉하게...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음식에 대한 욕구만은 아닌 거 같다. 허기진 마음과 구멍난 결핍을 그 음식 속에 담긴 따듯한 기억으로 위로 받고, 채우고 싶었던건 아닐지... 나로인해 당신이 당신으로인해 우리가 진짜 사랑하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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